안녕하세요. 글 쓰는 ‘서연’입니다.
오래전부터 가슴 깊숙한 곳에 간직해왔던 꿈 하나가 있었는데요, 현실적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게 꽁꽁 숨겨놓았습니다. 그런데 숨길수록 드러나는 진실의 힘은 무서울 만큼 커서 어떻게든 들키고 마는 것 같아요. 취향, 선택, 표정, 말투, 눈빛, 손짓 등에서 드러납니다.
최근 그런 이유로 누군가에게 들키고만 마음속 꿈을 얼마 전부턴 아예 밖으로 꺼내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새롭게 배우고 연습하고 도전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인데요.
지난주 나눴던 책, <고슴도치의 소원>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주 나눌 책, <코끼리의 마음>은 안될 것을 알면서도 꼭 되고 싶고, 하고 싶은 무엇, 즉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꿈이 있어 오늘의 초라함도 괜찮을 수 있는 세상의 모든 꿈쟁이들께 이 이야기를 띄웁니다.
코끼리 하면 생각나는 것은 긴 코와 커다란 몸입니다. 그래서 무거운 느낌이 들죠. 성격도 느리고 둔할 것 같고요. 그래서인지 이야기 속, 코끼리는 매일같이 나무에 오르고 싶어 해요. 누가 봐도 불가능할 것 같은, 자신이 생각해도 아닌 것 같은, 그래서 바라게 되는 꿈인 거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코끼리는 나무에 올라요. 올라서 먼 곳을 바라보고 기쁨의 춤을 추고 피루엣까지 하다가 결국 균형을 잃고 땅으로 쿵 떨어집니다. 오르는 것까진 어떻게든 이뤄내니 코끼리의 진짜 꿈은 떨어지지 않는 것일 겁니다.
그런 코끼리를 보고 다른 동물 친구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죠. ‘왜 오르고 싶니?’ 그런데 그런 마음엔 딱히 이유가 없어요. ‘그냥 그러고 싶어.’ 그러면 더 의아해져요. ‘그런데 매번 떨어지잖아.’ 코끼리 역시 자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첫 번째 책, <고슴도치의 소원>에서 톤 텔레헨 작가는 혼자 있고 싶어하는 고슴도치의 집에 다른 동물들이 방문하는 상상이나 꿈을 통해 고슴도치의 심리를 묘사했었는데, 두 번째 책, <코끼리의 마음>에서는 반대로 ‘내가 코끼리라면···?’ 하는 가정을 다른 동물들의 입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불가능한 꿈에 대처하는 각기 다른 선택들을 엿볼 수 있는 것이죠. 여러 동물들의 다양한 성격과 그에 따른 다른 선택들을 재미있는 전개 속에서 잘 녹여낸 것도 그렇지만 <고슴도치의 소원>에서 등장했던 몇몇 동물들이 똑같이 나와 그들의 고유한 성격을 살려주었다는 점이 읽는 묘미를 더해주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나무에 오르지 않기 위해 케이크를 먹고는 풀밭에 누워버리는 곰, 떨어지지 않는 법을 꼼꼼히 공부하는 물쥐, 코끼리가 되어버린 것이 창피한 진딧물, 코끼리가 되어버려 다행인 바퀴벌레 등. 동물들 모두 어쩔 수 없이 그 자신일 수밖에 없어서 완벽한 방법일 수 없는 제한적인 선택을 하죠.
그러다 부엉이에 이르면 모든 동물들에게 코끼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편지를 부쳐 코끼리로 하여금 더는 나무에 오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코끼리는 왠지 슬퍼져요. 그리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누구도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저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로 달려가면 되니까요.
기린에게서도 같은 깨달음을 얻는데요. 기린의 목을 타고 올라 세상을 둘러보고 내려오면 떨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땅에 도착할 수 있지만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잠시후 코끼리는 미루나무에 올라갔고, (중략) 곧이어 뒤에서 “야호” 하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역시나 “쿵”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 대목이 특히나 좋았던 것은 올랐을 때의 희열감인 ‘야호’와 떨어졌을 때의 아픔인 ‘쿵’이 그리 다른 소리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꿈은 반드시 아픔을 동반하지만, 그 아픔이 불행이거나 절망은 아니라는 것, 그 자체로 하나의 경험이자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느끼는 하나의 특별함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고요.다람쥐는 이렇게 편지를 써요.
너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 중요한 것을 아는 것 같아. (중략) 코끼리야. 우리 말 듣지 말고 계속 나무에 오르길 바라!
이제 다시 코끼리의 시점으로 바뀐 이야기는 일기 속 독백으로 전개됩니다. 잔잔한 호수와 같은 마음에 굵은 파동을 울리는 문장들이 참 많은데요. 그 중에 몇 개만 꼽아보겠습니다.
떨어지기 직전, 나는 아주 잠시 행복하다, 딱 그때만. (중략) 떨어지는 건 그 행복에 속한다.
나무에 오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떨어지는 건 예술 같은 거니까. 나만의 작품.
나무들은 꿈과도 같아.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잠에서 깨는 것과 같지. 나는 깨고 싶지 않아. 나는 잠을 자고 싶어.
이제 코끼리는 마음 놓고 나무에 오를 수 있어요. 마음 놓고 떨어질 수도 있고요. 떨어지면서는 나무에 오를 생각에 아프지 않고 마음이 평온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자신의 불가능한 꿈을 긍정할 수도 있어요. ‘왜’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거든요. 그 마음엔 이유가 없어요. 내가 나인 것에 이유가 없듯이.
다만 ‘그래서’라는 말은 존재합니다. 그 꿈을 꾼 이후의 순간들이요. 그래서 잠을 잘 수 없고, 그래서 다시 나무에 올라갈 것이고, 그래서 갈비뼈가 완전히 부러질 것이고 그래서 이야기가 된 코끼리의 마음처럼요.
현실적이지 못해서, 계산적이지 못해서, 오늘도 무거운 코끼리를 닮은 꿈을 가진 꿈쟁이들은 ‘그래서’ 행복할 거라고 믿어요. ‘왜’냐고 묻지 않기로 했지만 꿈은 이유도 없이 존재만으로도 설레고 두근거리는 충동이거든요. 초라한 오늘을 견디게 하고 두려운 내일을 만나게 할 힘이고 용기거든요. 꿈은 그래서 사람을 살게 하거든요. 삶을 살리거든요.
그러니 너무 고민하지 말아요. 왜냐는 질문과 실패에 대한 질책은 사실 아무 꿈도 꾸지 않는 자들의 궁지에 빠진 비명이니까. 코끼리가 꿈을 안고 사는 동안 행복하듯이, 떨어지는 순간조차 행복의 일부이듯이, 나무에 올라 춤을 추는 그 마음을 오늘 누리시면 그걸로 승리한 겁니다.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야호’ 외친 후에 바로 ‘쿵’ 하고 떨어져도 그 아픔은 어제보다 나은 나를 키우는 성장통에 불과합니다.
따뜻한 봄이 와서인지,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다가 다시 꺼내든 그 꿈 때문인지, 자꾸만 아침이 좋아져요. 새날을 부여받은 것 같아서. 바쁘고 피곤한 가운데 발걸음은 가볍고, 머리를 쓰느라 바짝 긴장해있지만, 마음만은 룰루랄라 춤을 추고 있어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진짜 봄날 속에 사는 코끼리 ‘서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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