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이 폭탄을 터뜨렸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의 회고록 내용이 공식 출간을 앞두고 세상에 공개됐다. 현지 시각 23일 공개될 예정인 볼턴 전 보좌관의 저서 '그 일이 일어난 방: 백악관 회고록(The Room Where It happened: A White House Memoir)'에는 보좌관 재직 당시에 겪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활동 막전막후가 담겨있다.
이미 워싱턴을 비롯한 각국 정가에서 회자되는 내용과 더불어 외교적으로 공개되기엔 부적절한 내용까지 알려지면서, 미국 현지에선 해적판까지 돌아다니는 등 핵폭탄급 관심이 쏠리는 중이다. 국내에도 몇몇 내용이 전해졌고 이에 청와대와 외교부 당국자들은 곤혹스러운 처지로 시종 해명과 반박을 이어가고 있다.
<리얼뉴스>는 모처로부터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 가운데 한반도와 관련된 내용을 입수했다. 입수한 문건에는 2018년 6월에 열린 북미 싱가포르 회담 전후로 벌어졌던 동북아 정상들과 외교 당국자들의 움직임과 발언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트럼프 동북아 외교 최일선에서 관련 협상과 업무를 주재했던 볼턴 전 보좌관은 당시 상황들을 세세히 회고해 기록했다. 본지는 3회에 걸쳐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 속 한반도 주변 상황 관련 내용을 전한다.
2018년 6월 11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전후
2018년 6월 북미 싱가포르 합의 이전 상황은 ‘북한의 비핵화’라는 안건을 축으로 여러 국가의 외교당국자들이 만나고 요구하고, 조율하는 과정이었다. 3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만나자는 김정은의 초청장을 건넸고 트럼프 대통령은 순간적인 충동으로 이를 수용했다. 정 실장은 후에 김정은에게 먼저 그런 초대를 하라고 제안한 것은 자신이었음을 거의 시인했다(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 담겼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볼턴은 “모든 외교적 춤판(fandango)은 한국이 만든 것이었고, 이는 김정은이나 우리의 진지한 전략보다는 한국의 통일 의제에 더 연관된 것”이라고 당시를 기억했다.
한 달여가 지난 4월 12일 정 실장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볼턴은 그에게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한미일 균열을 유도하는 시도를 막기 위해 비핵화에 대한 논의를 피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정 실장은 같은 달 24일 남북공동선언이 2쪽짜리일 것이라고 전했고, 비핵화에 관해 구체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일본의 시각은 한국과 180도 달랐으며, 요약하면 볼턴의 시각과 비슷했다. 일본의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NSS) 국장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의지는 고정된 것이며, 평화적 해결을 위한 기회는 거의 마지막이고, 일본은 지난 6자회담에서 합의한 ‘행동 대(對) 행동’ 방식을 믿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행동 대 행동’ 방식은 북의 구체적 비핵화 조치는 먼 미래에 배치해 지연되는 반면(dragging out), 경제적 지원은 먼저 하는 것이므로 북에 이로운 방식이라고 판단”했으며 “아무리 적더라도 북에 대한 경제적 지원의 한계 효용은 비핵화 조치의 한계 효용보다 크므로 무조건 북에 유리한 방식”이라는 인식을 나타냈다.
따라서 무조건 북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우선시돼야 하며 2년 내에 비핵화가 마무리돼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 야치 국장에게 볼턴 보좌관은 리비아 경험을 들어 북의 비핵화는 6~9개월 내에 끝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그다음 주 마라라고(미국 플로리다 팜 비치에 트럼프 대통령 별장이 있는 지역) 미일 정상회담(4월 18일)에서 아베 총리는 6~9개월 내 비핵화 완료를 주장했다.
당시 회담에서 아베 총리와 야치 국장은 납북 일본인 문제도 제기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줄기차게 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와 더불어 미일 정상회담에서 아베는 북한 문제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북한과의 합의는 비판을 받는 이란핵 합의와는 달리 엄격하고 실제적인 합의가 돼야 하며, 탄도 미사일의 경우 ICBM과 함께 일본에 직접 위협이 되는 중·단거리 미사일과 함께 생화학무기의 폐기 필요성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에게 김정은의 최근 방중 목적에 대한 의견을 문의했는데, 아베 총리는 아래와 같이 파악한 바를 언급했다.
북은 미국의 무력행사 가능성 또는 중국으로부터 지원되는 원유를 차단하는 상황을 우려함. 며칠 전 미국의 시리아 공습은 북한과 러시아에 많은 시그널이 되었을 것. 북에 대한 최고의 레버리지는 군사적 압박임. 예전 김정일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했을 때 매우 당황함.
한달 앞으로 다가온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일 정상간 통화(5월 28일)가 있었다.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요구한 모든 요소를 재차 제기했는데,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극히 낙관적인 견해와는 대비되는 인상이었다. 아베 총리는 김정은을 믿지 않으며, 비핵화와 일본인 납치문제에서 구체적인 공약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오바마 대통령보다 더욱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볼턴의 묘사에 따르면 “2018년 4·27 남북 판문점회담은 ‘올리브 가지를 입에 문 비둘기들이 날아다니지만, 실질적 내용은 거의 없는 DMZ 축제’”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회담 이튿날 한미 정상간 통화에서 “김정은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포함해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전했으며, 또 “김정은에게 1년내 비핵화를 할 것을 요청했고, 김정은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남북미 3자회담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그는 당초 회담을 판문점에서 한 뒤 후속 남북미 3자회담을 갖자고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김정은이 싱가포르를 선호한다고 하자 한발 물러섰다. 문 대통령은 또한 북한이 1년 안에 비핵화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미국이 준비가 안 되어) 국무부도 그 시간에 맞출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볼턴은 기록했다.
정 실장은 5월 4일 세 번째로 워싱턴을 방문해 판문점회담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제공했다. 4·27 판문점회담에서 한국은 김정은에게 ‘CVID’(완전(Complete)하고 검증이 가능(Verifiable, 확인하다)하며 불가역(Irreversible, 되돌릴 수 없는)적인 비핵화(Dismantlement, 핵(Nuclear))에 동의하도록 밀어붙였고, 김정은은 이에 따르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판문점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트럼프 대통령과 ‘빅딜’에 이르면 구체적인 것은 실무 수준에서 논의될 수 있다고 촉구하면서 북한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비핵화를 완수한 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북측은 한미 연합훈련을 문제 삼고 나오면서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트럼프는 한미 연합훈련의 준비태세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고, 한미 연합훈련이 김정은을 거스를 뿐만 아니라 끔찍이 비싸기만 하다고 언급하면서 큰 문제로 삼지 않았다. 반면, 유화적인 문재인 정부도 한미 연합훈련 축소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내었다.
회담이 열릴 싱가포르에서 북미 선발대 접촉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트럼프는 회담 개최 여부를 재고하기 시작했다. 볼턴은 문 대통령 방미 이전 북미정상회담 취소를 트위터에 올리도록 건의했고, 트럼프도 동의했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최선희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국장의 펜스 부통령 비난에 대한 대응으로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취소하기로 재차 방침을 변경했다(결과적으로 싱가포르 회담은 일정 차질 없이 진행됐다).
5월 22일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문 대통령이 남북미 3자회담을 위해 싱가포르에 동참하기를 원했고, 심지어 6·11 회담 전날까지 오고 싶어 했다. 문 대통령이 (미래의)2019년 6월말 트럼프-김정은 판문점 회동 때처럼 이번에도 사진 행사에 끼어들기를 원했으나 이런 구상을 무산시킨 것은 북한이었다. 김영철은 6월 1일 백악관을 방문해 “이건 북미회담”이라며, “남한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이야기가 나온 ‘종전선언’도 원래는 북한 아이디어인 줄 알았는데 문 대통령의 통일 의제에 서 나온 것으로 의심했다. 볼턴 보좌관은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함께 종전선언 대가로 핵·미사일 신고를 공동성명을 포함하는 방안을 마련했으나 결국 담기지 않았다.
2018년 6월 북미 싱가포르 회담
폼페이오 장관이 회담 준비 브리핑을 할 때 트럼프 대통령은 “이건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핵심 내용이 빠진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기자회견을 열어서 승리를 선포하고 이곳을 빨리 뜰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북한을) 제재하면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고, 트럼프는 “아주 명석하고 비밀스럽지만, 인간적으로 괜찮은 사람, 훌륭한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이렇게 순진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이번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날지 아니면 그 자리서 끝나게 될 위험 부담을 미국에 지웠는데,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은 “낚였(hooked)”다.
김정은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이전 미 정부의 대북(對北) 적대정책을 비난하며, 북미 정상이 자주 만난다면 불신을 걷어내고 비핵화 페이스를 가속할 수 있다고 언급했고 트럼프는 과거 오바마가 이란 핵합의를 비준하지 않은 것과 대조하면서, 북한과의 핵 합의에 상원 비준을 받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이에 김정은은 더 이상 핵실험은 없을 것이며, 불가역적 방법으로 비핵화를 하겠다고 언급했다.
김정은은 한미 연합훈련을 줄이기를 원한다고 했고, 트럼프는 즉시 “한미 연합훈련은 돈과 시간낭비다. 불만스럽다”며 한미 훈련 취소를 결정했다. 트럼프는 “훈련은 도발적이고 시간과 돈 낭비”라며, “결코 동의하지 않는 장군들을 무시하고 협상하는 동안은 훈련을 중단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김정은: 유엔 제재 해제가 다음 주제가 될 수 있겠느냐
트럼프: (우리는)그 논의에 열려있다.
김정은: 나를 믿을 수 있냐
볼턴: 대통령이 믿으면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김정은: 내가 (북한) 강경파들에게 당신(볼턴)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회담 한 달여가 지나고 폼페이오 장관이 2018년 7월 6일부터 이틀간 방북했지만 김정은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으며, 워싱턴으로 전화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실망스러웠다”고 전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신뢰구축은 개소리였다”며 화를 냈다.
김정은이 8월부터 ‘연애편지’라 불리는 친서를 보내 “곧 만나자”고 제의하자 트럼프 대통령도 싱가포르 이후 후속 회담을 서둘렀다. 볼턴은 이 당시 트럼프에게 “하찮은 작은 나라 독재자가 쓴 편지이며, 그가 폼페이오를 만날 때까지 당신(트럼프)과 만날 자격이 없다”고 했지만, 트럼프는 “당신은 왜 그렇게 적대감이 많으냐”며 폼페오에게 “11월 중간선거(미국의 상원과 하원 의원을 선출하는 선거)이후 김정은을 만날 테니 전화를 걸어 요청하라”고 지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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