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왜 성추행 징계에 맞서기로 했나

지난 5월 공공기관 고충처리위원회에 성희롱·괴롭힘 신고 접수
피해자와 참고인 증언만으로 8월 센터장 해임징계
센터장 부서 그간 노조의 표적, 징계 감사한 감사부장은 전 노조위원장

이환희 승인 2020.08.21 12:47 | 최종 수정 2020.08.21 14:57 의견 0

한 남자가 있었다. 그를 Z라 부르자. Z는 최근 감사를 받고 해임이라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직급의 힘을 이용해 하급자를 지속해서 괴롭히거나 모욕하고 성적으로 추행하며 희롱했다는 혐의였다.

감사 결과서는 완강하고 뒤가 없을 문장으로 가득했다. Z는 그에 맞서 자신의 혐의가 근거 없고 무고하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감사 재심은 물론 법적 대응도 강구한다. 그는 무엇이 억울하고 원통한 것일까.

<리얼뉴스>는 최근 문을 연 성폭력무고상담센터가 입수한 공공기관 감사부의 ‘직장 내 성희롱 및 괴롭힘 고충 민원 관련’ 결과보고서를 취재했다. Z의 진술과 감사결과서를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해보았다.

성폭력무고상담센터가 입수한 ‘직장 내 성희롱 및 괴롭힘 고충 민원 관련’ 결과보고서를 낸 공공기관
성폭력무고상담센터가 입수한 ‘직장 내 성희롱 및 괴롭힘 고충 민원 관련’ 결과보고서를 낸 공공기관

#1. 2019년 6월 대구

회사에서 준비한 행사가 끝났다. 서로의 수고를 격려하는 회식이 열렸다. 2차까지 이어진 회식. 대구 시내 한 일본식 주점 테이블 상석에 Z가 앉았다. 그의 옆엔 피해자 A가 있었다. 술이 얼큰히 올랐다. A가 취기를 빌려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Z의 손을 잡았다. 함께 일하던 인턴 연구원들에 따르면 A는 전부터 취하면 스스럼없이 손을 잡고 팔짱을 끼는 버릇이 있었다.

기혼에 사내 부서의 리더격인 Z는 당황스러웠다. 상황을 벗어나고자 A의 다리를 손톱으로 긁었다. 긁고 나서야 맨다리였음을 안 그는 A를 밖으로 불러 손을 잡지 말라고, 다리를 긁은 건 경고의 의미라고 양해를 구했다.

A는 감사결과서 속 진술에서 다리를 긁은 게 아니고 무릎과 무릎 위쪽을 Z가 쓰다듬는 행위를 했고 이에 ‘하지 마세요’란 말을 하며 저지했지만, 그가 굴하지 않고 손을 잡는 행위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Z는 A의 적극적인 저지를 반박하며 동석한 부서원 누구도 이를 목격하거나 청취한 적 없다고 소명했다. 이튿날 두 사람은 전날 일을 두고 서로 취한 결과라며 사과하고 정리했다. 그 일이 있은 뒤에도 Z와 A는 평상시처럼 연락을 나누고 일을 했다. A는 퇴사 후에도 수차례 회식에 나오고 Z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감사부는 이 일을 두고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해 성희롱한 것으로 판단했다.

#2. 2019년 8월 대구

회식은 3차까지 이어졌다. Z와 피해자 B도 자리를 함께했다. 2차 회식 장소에서 B는 업무의 피로감을 호소했고 화장실로 향했다. Z는 B를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화장실 밖에서 기다렸다가 B가 나오자 “많이 힘들지, 다 얘기하라”라며 어깨를 두드렸고, “이해해줘 감사하다”는 B의 답에 엉덩이를 툭툭 쳤다.

기분이 나빠 귀가하려는 B를 강권해 3차 자리를 인도한 Z는 동석한 5인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테이블 아래로 B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자리가 파할 무렵엔 계단에서 내려오는 B에게 입을 맞췄다. 감사결과서는 성추행이라 판단했다.

Z는 어디서부터 소명해야 할지 어리둥절하다. 그날 B는 많이 취했고 많이 울었다. 새로 배치된 상급자와의 관계를 조정해달라고 Z에게 요청했다. 조직의 일이라 가능할 리 없었고 이에 B는 취기에 힘을 내 Z에게 퇴사할 거라 목소리를 높였다.

Z는 2차 화장실 앞에서 있었던 일은 사실무근이며 3차행은 강권이 아니라 B의 주장에 따른 것이라 밝혔다. 자리에서 내내 울던 B가 사라지자 자리에 있던 온 부서원이 나서 찾기 시작했다. 인사불성으로 화장실에서 나오는 B를 발견한 Z는 불필요한 접촉을 우려해 계단을 내려가는 B에게 본인 가방을 잡게 했다.

테이블에서 접촉 역시 인정할 수 없었다. 테이블 구조상 머리를 허리 아래로 박지 않으면 접촉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던 상황. 이를 확인했다는 혹은 당시 B의 이야기를 청취했다는 참고인 S 말고는 그날의 기억을 함께 떠올리는 그때 동석자는 없다. 현장엔 두 명의 부서원이 더 있었으나 감사부에선 B와 참고인 S의 진술만을 인용할 뿐이다.

감사결과서는 “피해자가 동 회식에서의 피해 사실을 동료 여직원(피해자 C, 피해자 A)뿐만 아니라 참고인에게도 포괄적으로나마 피해 사실을 알렸다는 점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여 관련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적혀있다.

사실과 사실일 수도 있는 개연성 사이에서 Z의 혐의는 표류하고 있다.

#3. 2020년 4월 서울

B의 송별회식 자리. Z는 피해자 C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C는 주먹으로 맞았다고 주장한다. Z는 그런 사실을 일부 인정한다. B와 C의 실랑이 도중 C의 얼굴이 Z쪽으로 오자 손으로 막으려는데 손바닥으로 막으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까봐 주먹을 쥐었고, 거기에 C의 얼굴이 닿았다. 이는 동석자가 목격한바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앞서 C는 Z와의 일화에서 좋은 감정을 지니지 못한 상태였다. Z의 전 이성친구와 동명인 사실을 언급하며 “니(C)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C는 이 이야기를 통해 그의 괴롭힘을 짚었다.

Z는 C의 채용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합격한 C에게 이 이야기(전 이성친구와 동명인 사실)를 했지만 호오 감정 표명은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C의 선임이 될 부서원에게 잘 챙겨주라고 당부하는 한편, 공개석상에서 C의 업무 능력을 칭찬하는 등 C에게 적의를 드러내기는커녕 추켜세웠다고 밝혔다.

피해자 셋과 참고인 S를 포함하는 성희롱·괴롭힘 접수는 올해 5월 19일이었다. 피해자 B는 계약이 만료돼 4월자로 퇴사한 상태였다. 사건이 벌어진 지 수 개월이 흐르고 난 뒤였다. 그사이 부서의 책임 격이던 Z는 피해자 B, C, 참고인 S와 좋지 않은 건으로 감정이 불거졌다.

B와 C와는 그들의 근태 불성실을 두고 질책이 있었다. S는 행사와 부서 간식으로 쓰일 다과를 자신의 부모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구입한 사실이 적발돼 그의 호된 지적을 받았다. 의견은 엇갈리나 그는 동시다발적 신고가 벌어진 데에는 그 같은 동기가 존재하지 않을까 추정한다.

정황과 추측에 불과하지만 신고가 이뤄지기까지 여러 여직원을 포함한 숱한 회식이 있었을 텐데 꼭 짚어 수개월 전 일을 거론하는데 Z는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성 비위 신고에 적시적기가 따로 있지 않은 최근 일련의 사건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한 가지 더 짚이는 지점이 있다. Z의 부서는 오랜 시간 노조의 표적이 돼왔다. 매출은 적은 데 덩치만 큰 비효율의 상징이라는 비난이었다. 노조는 지속해서 부서 통폐합을 주장했다. 권한을 넘어서는 주장이었다. 부서의 대표 격인 Z가 없으면 손쉽게 풀릴 수도 있을 일이었다.

피해자, 참고인들과 Z의 갈등을 탐지한 노조 부위원장이 노무사를 섭외해 피해자들을 만나며 임무 밖의 자체적 조사를 벌이고 더 나아가 계약직 연구원인 피해자들에게 전문직·공무직 자리를 이야기하기도 했다며 Z는 관련 자료와 사진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감사의 1단계라 할 고충처리위원회의 감사 방식도 죄를 확정하고 사후 확인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신고가 접수되고 Z의 출석을 요구했는데 언제, 어느 건인지도 사전에 모른 채, 소명할 수 있는 준비도 못한 채 출석했고, 지난해 어느 날 있던 일을 아무 기억, 자료도 없이 즉자에 답변하라는 식이었다.

노무사도 고충위가 의뢰한 본 건을 자체 조사했지만, 혐의 가운데 일말의 조사 없이 사실이라 결론 내리기도 했다. ‘성추행이라 이를 일이 이뤄졌나, 그것이 사실인가’의 영역이 아니라 ‘이런 주장을 피해자가 했는데 이것이 성추행인가, 아닌가’에 논의 초점과 결정이 모였다.

정의당 진주시위원회가 2018년 10월 당원모임에 공공기관 노조 위원장(사진 오른쪽 맨 앞)을 초청해 노동관련 이야기를 나눴다(출처 정의당 진주시위원회 페이스북)
정의당 진주시위원회가 2018년 10월 당원모임에 공공기관 노조 위원장(사진 오른쪽 맨 앞)을 초청해 노동관련 이야기를 나눴다(출처 정의당 진주시위원회 페이스북)

한편 감사 업무를 총괄하는 감사부장(사진 오른쪽 맨 앞)은 노조의 전임 위원장이다. 그 역시 Z가 속한 부서 무용론을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아닐 거라고 믿고 싶지만, 어떠한 사감이나 선입견 없이 감사가 이뤄졌으리라 생각할 수 없는 실정이다. 감사 결과는 피해자의 주장을 전부 인용했고 Z에게 ‘해임’처분을 내렸다. 현재 Z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여러 대응을 준비 중이다.

그는 감사 과정에서 사건이 벌어졌던 자리에 동석했던 부서원들 이야기를 충분히 듣는 등의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호소한다. 자신의 무고는 차치하고 정당하고 마땅한 절차를 밟은 징계라면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사는 일방적이고 생략된 졸속의 징계 절차로써 이번 일을 매듭지어가는 중이다. Z가 재심은 물론 소송까지 불사하는 이유다.

<리얼뉴스>는 후속 취재를 이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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