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은 왜 그를 고소했나

이환희 승인 2023.01.03 14:16 | 최종 수정 2024.06.17 12:53 의견 0

군대 내에서도 사랑이 벌어진다. 전쟁통에서도 사랑은 싹텄으니까. 계급을 공개할 수 없는 남군과 여군의 이야기. 두 사람은 오래 사랑하며 성관계를 맺어온 사이다.

어느 날, 여군의 상사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징계 등 여군은 군내에서 받을 불이익이 두려워 부대 내 양성평등 상담사에게 상담하게 됐다. 그녀는 있는 사실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두 사람 사이 합의로 남군과의 성관계가 이뤄졌지, 남군에게 성관계를 강요받거나 강제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사실과 증거만을 전제로 상담이 이뤄졌어야 하는 상황에서 상담사는 묘한 생각을 품게 됐다. 여군이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공개될 시 여군의 평판이나 지위가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 생각에 바탕해 상담사는 여군을 설득하기에 이른다. 남군을 고소할 것을, 남군이 자신을 강간했고 강제추행 했다고 ‘허위 고소’를 할 것을 종용한다. 결국 그녀는 남군을 고소했다.

군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결국 ‘불기소’되었다. 남군의 죄가 특정되지 못해 재판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검사는 불기소 이유서에서 “피의자는 증거불충분하여 혐의 없다”며 “피의자(남군)가 고소인(여군)의 자발적인 협조 없이 5개월간 장기간에 걸쳐 고소인의 의류와 속옷을 모두 탈의시킨 후 성관계를 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적시했다.

군검찰은 이어, 여군의 무고(誣告) 범죄임을 인지해 자체 수사하고 기소했다. 재판부는 무고 혐의를 받은 여군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로써 여군의 군 생활은 불명예스럽게 끝이 났다.

여군은 애초 남군을 고소할 마음이 없었다. 양성평등 상담사의 종용이 아니었더라면 여군의 인생이 이렇게 돼버리진 않았을 것이다. 당시 상황에서 여군의 피해나 심리를 최우선으로 중요시해야 할 상담사의 잘못된 판단에 있지도 않은 범죄를 생으로 만들려고 했다. 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부대 내에서 평판이 나빠질 것을 우려해 허위로 피무고자를 성폭력으로 고소한 사안”이라 판시하며 사건의 정의를 간명히 내렸다.

재판 과정에서 찬조 출연한 단체가 있으니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였다. 이 단체는 평소 여성의 무고 재판 과정에서 기계적으로 탄원서를 보내 여성의 억울함을 강조하는 등 재판부에 압력을 넣었다. 이번 재판으로 살펴본바 이들의 활동은 오히려 화를 더욱 키웠다. 군 재판부는 협의회의 탄원서에 반응해 무고 사건에 평소 낮은 형량을 선고하던 경향에서 벗어나 중형을 선고했다. 협의회의 탄원서가 적어도 이 재판에 압력을 주진 못했다는 방증이다.

다른 한 곳은 군인권센터. 역시 관행적으로 탄원서를 제출하는 이곳은 탄원서를 통해 무조건 여자는 피해자이고 비록 명백히 무고(無辜)한 남자는 가해자라고 주장한다. 적어도 이들 앞에 사실과 증거에 기반해 이뤄져야 하는 재판은 존재하지도 않는 듯 느껴진다.

여군의 행방과 이후의 삶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녀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군인으로 군문에 기록되었다. 그녀의 죄과를 놓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어깨를 겯고 끝까지 연대하자던 단체들은 금세 풀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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