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디컬 페미니즘은 정치적으로 실패했다

이들과 역할분담을 한 온건 페미니즘 역시 실패했다

새로운 분위기 감지

최근 열린 당당위의 사법정의 요구 집회에 현장 조사차 다녀오면서 조금 놀란 건 자원봉사자는 물론이고 참여자 중에서 의외로 중간중간 젊은 여성들이 보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오세라비 작가가 진행하는 ‘워마드 피해 여성 사례’ 모집에도 꽤 많은 사연이 모였다는 후문도 접하게 됐다. 일명 트페미들의 사이버 불링 문화에서도 같은 여성을 흉자라고 괴롭힐 때 더 악독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표적인 반페미니즘 커뮤니티인 트위터 마이너 갤러리에서도 트위터에서 덕질을 하다가 젠더문제에 대한 이견을 계기로 틀어지거나 괴롭힘을 당했다는 여성 네티즌의 증언이 심심찮게 올라오곤 한다. 물론 아직까지 여성 전반적으로 페미니즘에 옹호론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 사이에서도 ‘래디컬 페미니즘(일명 랟펨)’에 대한 반감이 움트고 있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남성혐오 전략

한국에서 래디컬 페미니즘은 메갈리아·워마드를 필두로 ‘남성혐오’를 정치적으로 수단화하는 동시에 과거 인터넷 커뮤니티 일각의 여성혐오 문화를 근거로 이를 정당화하거나 아니면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궤변으로 일관해왔다.

이들이 남성혐오를 정치적 무기로 삼은 이유는 분명하다.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 남성을 ‘찌질한 루저(한남충)’ 등으로 낙인을 찍어 고립시키고 대다수 여론을 페미니즘과 여성인권 운동으로 끌고 가기 위함이었다. 낙인을 통한 공포가 상대를 고립시키고 폭력의 쾌감이 우리를 결집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여성단체들은 2016년 여성회의에서 메갈리아를 3세대 페미니즘으로 호명함으로써 이들의 혐오를 운동의 방법론으로 공식적으로 승인한 바 있다.

하지만 필자는 오래전부터(<혐오의 미러링> 출간 이래로) 이러한 소위 미러링이라고 포장된 래디컬 페미니즘의 전략이 (도덕성과 별개로) 실패할 것이라고 예견해왔고 특히 이에 동조하는 진보진영 일각의 정치적 오류를 비판해왔다.

안타깝게도 필자의 예견은 적중했다. 최근 이수역 사건을 통해 래디컬 페미니즘의 민낯이 백주에 폭로됐고 워마드 주도 혜화역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두 여성은 전국민적인 웃음거리가 됐다. 메갈리아가 워마드로 옷을 갈아입은 이후 어떤 여성계 인사도 이제는 공식적으로 메갈리아·워마드와 (윤김지영 같은 노골적인 남성혐오주의자를 제외하면) 연루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출처 건대신문)-전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 신지예(출처 녹색당)

과거 메갈리아를 옹호해온 지식인은 지금도 입을 씻거나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남들에게 쉽게 반성을 요구해온 그들이야말로 20대 남녀 갈등이 심화된 작금의 상황에 대해 반성문을 제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래디컬 페미니즘, 여성보다 남성 더 결집시켜

이와 관련해 지난 연말에 공공의 창 의뢰로 리얼미터가 수행한 페미니즘과 젠더이슈를 둘러싼 여론조사를 보면 몇 가지 흥미를 끄는 대목이 나온다. 젊은 층의 조사를 보면 페미니즘 운동을 반대한다는 20대와 30대 남성 여론은 75.9%, 66.1%로 나타났다.

반면 페미니즘 운동에 찬성한다는 20대와 30대 여성은 각각 64.0%와 44.0%로 나타났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페미니즘 이슈는 젊은 여성보다 오히려 젊은 남성을 더 결집시켰다는 점이다. 낙인과 상징폭력이 페미니즘에 비우호적인 젊은 남성을 고립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여성 이상으로 단결하게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같은 사태는 각 대학가의 총여학생회의 연속적인 폐지운동과 그 성공에서도 명백히 나타난다. 이들이 페미니즘에 반감을 품은 계기는 분명하다.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주된 이유로 ‘일방적인 남성혐오’라고 응답한 비율은 20대 남성은 78.1%였다. 30대 역시 같은 이유를 응답한 비율이 47.6%로 나타났다. 한 마디로 메갈리아 등장 이래로 남성혐오의 유행에 질려버린 것이다.

또한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앞서 서두에서 언급한) 의외로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 젊은 여성의 인식이다. 이들이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주된 이유를 살펴보면 20대 여성과 30대 여성 모두 ‘일방적인 남성혐오(39.2%, 47.6%)’가 다수를 점했다. 한 마디로 남성혐오를 빌미로 같은 친구, 연인, 남편, 아들에 대해 가하는 공격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공격성이 분출될수록 실제 피해사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남녀 차이 인정하지 않는 태도(33.9%, 22.8%)’도 무시할 수 없는 비율을 나타냈는데, 아무래도 최근 래디컬 페미니즘 운동이 탈코르셋을 빌미로 뷰티 유투버와 미용에 관심 있는 일반인 여성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인 게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온건 페미니즘도 거부하는 젊은 남성

한편 2016년 메갈리아 사태 이래로 리버럴 혹은 온건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긍정적 남성성상’을 제시함으로써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여론을 반전시키고자 했다. 이 중 대표적인 인사가 방송매체 그리고 강연을 통해 잘 알려진 손아람이다.

2017년 11월 22일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 1020이 묻고 손아람 작가가 답하다, 강연하는 손아람 작가(출처 CBS)

이들은 여성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을 남성에게 설득하는 계몽적 태도를 줄곧 취하곤 했다. 그러나 2018년 11월에 발표된 한국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성은 사회적 차별을 받고 있다’는 진술에 대해 20대 남성 중 동의하는 비율은 23%에 지나지 않았다. 절반(49%)이 이에 동의한 50대 남성과도 대조되는 사항이다.

문제는 이 결과가 몇 해 전 이뤄진 조사와 대조된다는 점이다. 2016년 여성가족부가 주관한 양성평등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이 불평등’하다고 응답한 20대 남성 비율은 57.4%로 과반을 넘었다. 물론 조사를 수행한 기관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으나 이는 지난 몇 해 사이 여성의 지위에 대한 젊은 남성의 인식이 변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거듭된 매도와 낙인에 지친 이들은 과거와 달리 ‘여성이 뭐가 차별받는 거냐’고 반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변화는 ‘낙인을 통한 위협’ 전략은 물론이고 손아람 등이 밀고 나간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긍정적 남성상 롤모델’ 제시 또한 이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좋다’는 온건 페미니즘의 설득에 대해서조차 젊은 남성 단호하게 ‘응 아냐’라고 대답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온건 페미니즘조차 남성혐오를 통해 자신을 공격하는 래디컬 페미니즘과 일종의 ‘역할분담’을 이루고 있다고 인식하며 페미니즘 자체를 원론적으로 거부하는 데 이르게 되었다. 한 마디로 래디컬 페미니즘의 남성 고립(채찍) 전략은 물론이고 이들과 공생해온 주류 여성계의 회유(당근) 전략 역시 실패했다는 것이다. 여성계의 속내를 눈치채지 못하는 바보가 아니라는 뜻이다.

유일한 대안은 ‘반혐오’ 매개로 한 남녀 간 공감대

그렇다면 현재 극심한 상태로 치달은 남녀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반혐오’를 매개로 젊은 남녀 간의 연대를 복원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 이에 반해 트페미를 대변하고 워마드를 변호하는 신지예에게 맞서 최근 젠더이슈를 계기로 ‘야갤화’된 남초 커뮤니티 여론을 추수하려는 하태경과 이준석의 노선은 대안이 아니다.

대중적 반혐오 운동이 나타날 조짐은 조금씩 보인다. 최근 당당위는 세 차례의 집회를 통해 일방적인 유죄추정의 관행을 비판했고 주변인의 피해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일부 젊은 여성 역시 이에 참여한 바 있다. 이들이 전면에 내세우는 가치가 ‘남성인권’이 아닌 ‘헌법수호’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집회에 참여하는 일반인들도 거듭된 이성혐오에 대한 피로감을 자주 호소했다. 앞으로는 혐오정치와 일방적 조리돌림으로 인해 피해를 본 여성의 사례 또한 발굴함으로써 공감대를 넓힐 필요가 있다.

앞서 보았듯이 페미니즘에 동정적인 일부 여성조차 자기 주변의 가까운 이들이 일방적으로 공격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또한 탈코르셋을 빌미로 같은 여성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막장스러움에 다수의 젊은 남성 역시 경악할 수밖에 없다.이들 사이의 공감대를 복원하고 혐오에 맞서는 시민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또한 그것만이 젊은 세대 내의 갈등 이슈를 넘어서 기성세대 또한 공감하는 흐름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역할을 페미니즘이 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은 이제 더 이상의 이성 혐오를 부추기지 않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