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시작하기 가장 좋은 날

[서연의 무빙 위드 무민] 달빛 모험

서연 승인 2020.09.07 12:32 | 최종 수정 2020.09.07 12:51 의견 0

한 가지 일을 겪지 않으면 한 가지 지혜가 자라지 못한다.
feat 명심보감

오늘은 겨울 동안 멀리 여행을 갔던 스너프킨이 돌아오기로 한 날이에요.
무민은 스너프킨을 만날 생각에 가슴이 뛰었어요.
"스너프킨과 강에서 갈대 보트를 타고 놀아야지"

시작은 언제나 설레는 법이지.

새 학년, 새 학기가 된다거나 새 친구를 사귄다거나 하다못해 시험을 치르고 특별활동을 하는 등 반복된 생활에서 살짝 변화된 계획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느슨해진 마음에 긴장과 같은 리듬을 줄 수 있어.

그래서 우리는 일부러 여행을 떠나기도 한단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풍경, 새로운 음식, 새로운 사람을 접하면서 잠자고 있던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고 타성에 젖거나 권태에 빠진 생활을 다시 되돌리기 위해서 말이야. 각자의 생활패턴과 현재의 심리상태에 따라 여행은 하나의 터닝포인트, 티핑포인트, 혹은 힐링의 시간이 되기도 해.

여행을 떠나기 전, 만발의 준비를 하는 모습을 떠올려봐.

예쁜 옷과 화장품, 그에 걸맞은 액세서리, 멋진 모습을 가득 담을 사진기와 그곳에서 즐길 놀이를 위한 갖가지 도구들. 짐이 늘어나는 만큼 행복 지수도 올라가고 있을 거야. 그만큼 구체적으로 기대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막상 여행하는 동안은 상상했던 대로 재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몸의 컨디션, 동행인들과의 화합, 낯선 장소에서의 적응력 등 관리가 필요한 부분도 이유가 되겠지만 날씨, 해프닝과 같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계획을 방해하는 거야.

그래서 로망(실현하고 싶은 소망이나 이상)은 로망으로만 남겨두는 것이 가장 로망적(이상적)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한때 유행어처럼 돌기도 했지만 그건 어떤 시도도 하지 않으려는 회의주의, 허무주의와 통하는 말이야.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와 조금 더 가까운 말은 ‘어차피’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니까.

‘어차피’ 최고가 안 될 거라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는 극단성이 아니라 최고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보는 것, 최선도 아닐 수가 있지만, 그러면 그다음인 차선을, 정말 그마저 아니라면 차라리 가장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현명한 거야.

무민 마을에 며칠 동안 계속 비만 내리다가 모처럼 화창한 날이 되자 가족들은 섬으로 모험을 떠나기로 해.

무민(토베 얀손 지음/예림아이 출판)
무민(토베 얀손 지음/예림아이 출판)

아빠는 낚싯대와 모자를 종류별로 챙기느라 정신없고, 엄마와 미이는 파이와 주스를 만들려고 산딸기를 따느라 분주하고, 스노크메이든은 원피스와 수영복, 양산을 꺼내 둔 채 거울 앞에서 단장하고, 무민은 그 앞에서 뭐가 더 예쁜지 함께 골라주느라 진땀을 빼지. 그러느라 밤이 온 것도 모르고 말이야.

"야호, 출발이야!"
"그런데 벌써 해가 졌잖아" 미이가 투덜거렸어요.
"그래도 상관없단다. 달빛 아래에서 모험하면 되잖아!"

무민 엄마의 한 마디에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시무룩해진 마음을 바꿔.

그렇게 모두를 태운 배는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한밤의 항해를 출발하는데 이 페이지는 마치 아주 오래된 감성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척이나 아름다워.

무민(토베 얀손 지음/예림아이 출판)
무민(토베 얀손 지음/예림아이 출판)

스노크메이든은 물속을 들여다보다가 반짝이고 있는 보물을 발견해. 물속에 손을 집어넣어보지만 보물은 잡히지 않았어. 그러자 바른말 잘 하는 미이가 퉁명스럽게 말하지.

"그건 보물이 아니야, 달이 물에 비친 것뿐이라고!"
"아니야, 보물이야! 정말 소중한 보물. 안 그래, 무민?"

둘의 말다툼이 시작되려는 찰나 무민은 이렇게 말해.

"보물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방법은 이것뿐이야"

그리고 누가 말릴 틈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어.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헤엄을 치면서 바닥까지.

무민은 여자친구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참 로맨틱하지?
맞아, 무민은 참 로맨틱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용감하고 따뜻해.

한밤의 바닷물은 깊고 춥고 어둡잖아. 용기란 두렵지 않은 마음이 아니야. 두렵지만 두려움보다 더 큰 보물을 위해 움직일 힘이 바로 용기야.

여기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은 통하는구나. 깊고, 춥고 어둡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넘어설 만큼 반짝이는 보물을 향해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 수 있는 마음, 무민은 그 마음을 가졌던 거야.

"보물이 맞아! 달빛이 보물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

그리고는 달빛을 머금은 아름다운 진주조개를 스노크메이든에게 주었어.

사실 미이의 말이 더 맞지 않겠니?

우리의 시야가 들여다볼 수 있는 밤바다라곤 기껏 수심 몇 미터에 불과할 텐데 스노크메이든이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던 반짝거림은 아마도 수면에 비친 달빛이었을 거야. 깊은 바닥에 가만히 놓여있어 보이지도 않았을 조그마한 조개가 아니라.

무민(토베 얀손 지음/예림아이 출판)
무민(토베 얀손 지음/예림아이 출판)

그런데 물속에서 불쑥 나온 무민이 한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 봐. 달빛이 보물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해. 보물이라고 믿고 있는 스노크메이든이 실망하지 않게, 또 달빛이라고 주장했던 미이가 무안하지 않게 모두를 배려해서 이야기한단다.

무민의 마음은 로맨틱하고, 용감하고, 따뜻하기까지 해.

그런 마음을 가진 이에게 돌아올 결과는 좋은 값일 수밖에 없어. 왜냐하면, 그 어떤 결과도 그는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거거든. 태도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은 그래서 거짓일 수 없는 거야.

결국 섬에 도착한 후, 모두는 무민의 용감했던 모험 이야기와 더불어 맛있는 만찬을 즐겨. 달빛 아래에서 모닥불에 둘러앉아 노래하고 웃으면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지.

‘어차피’ 돌아올 거라 여행하지 않았다면?
‘어차피’ 늦었으니 떠나지 않았다면?
‘어차피’ 달빛이니 물속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무엇 하나 남는 게 없는 거지.

<명심보감>에서는 ‘경험 한 번에 깨달음 하나’라고 했어. 허무와 회의에 젖지 말고 두려움에 지지 말고 도전, 모험, 경험해보라는 거야.

하나 더 보태자면, 결심하고 일어섰는데 막상 운동화 끈이 풀어진다거나, 밤이 되었다거나, 달빛조차 없는 길을 걷게 된다고 해도 최고보다는 최선, 최선보다는 차선을 택하는 거야. 차선도 안되면 차라리 즐기라는 거고.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최고인 줄 알았던 것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고 차선인 줄 알았던 것이 최선을 넘어 최고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단다. 말했듯 그런 결과는 매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달린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낸 무민이 남긴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어. 보석이 된 조개, 추억이 될 이야기, 행복한 지금 이 순간까지.

무민의 마음과 태도가 그것들을 가능하게 한 거야.

감동을 받은 스노크메이든이 무민의 어깨에 기대며 고맙다고 말하자 무민은 내일은 더 많은 보물을 찾아주겠다고 약속해.

"분명 모험하기 좋은 날일 테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한, 언제나 오늘이 가장 소풍 가기 좋은 날, 모험하기 좋은 날이야. 흐린 날에도, 어두운 밤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걷는 길의 달빛이 돼줄 거거든. 어둠도 이기는 달빛 한 줄기로 결국은 서로가 서로의 보물이었다는 진실을 꼭 발견하길 바랄게.

그냥 아는 것과 행동으로 깨닫는 것은 운동을 책으로 배우는 것과 직접 땀 흘리며 체득하는 것만큼 다른 거야. 그러니 미루지 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오늘이 시작하기 가장 좋은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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