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 페미니즘 광풍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각
- 주체성 부르짖는 비주체적인 ‘상실의 세대’
- 박근혜 정권의 판 뒤집기와 ‘상실의 세대’의 위기의식
- ‘상실의 세대’와 ‘페미피아’, 영혼의 단짝으로 만나다 1
- ‘상실의 세대’와 ‘페미피아’, 영혼의 단짝으로 만나다 2
- 홍위병 이끄는 ‘강청’이 되고픈 ‘상실의 세대’ 1
- 홍위병 이끄는 ‘강청’이 되고픈 ‘상실의 세대’ 2
- ‘상실의 세대’, ‘승리의 세대’를 검열하다 1
- ‘상실의 세대’, ‘승리의 세대’를 검열하다 2
- 모택동 자임하는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
- ‘80년대 가치’ 맹종 아닌 필터링과 극복 요구하며 1
- ‘80년대 가치’ 맹종 아닌 필터링과 극복 요구하며 2
이제까지 필자는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과 ‘페미피아’의 연합 활동을 ‘문화대혁명’으로 규정하고, ‘홍위병(메갈리아)’을 이끄는 ‘강청’에 비유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모택동’의 적극적인 지지와 정당성 및 권위 부여가 있었기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러한 사건으로 ‘페미니즘’ 광풍을 빗대었는데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과 ‘페미피아’가 ‘강청’이라면, 그 뒤를 봐주고 있는 ‘모택동’은 과연 누구일까. 다름 아닌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의 선배들인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실제로 메갈리아 활동을 시작으로 진행된 페미니즘 광풍 현상에 대해 ‘유신·386세대’에 해당하는 정치인·지식인·엘리트 등은 호의적인 시각과 함께 적지 않게 동조하는 행보를 보였고, 80년대를 절정으로 계속된 그들의 사회에 대한 헌신들을 기억하고 지지·존중·존경했던 온라인 공간의 대중(특히 청년층)은 이같은 그들의 태도를 상당히 의아해했다.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은 왜 두 집단의 연합 활동에 이러한 모습을 보였을까. 이 문제에 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들과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과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과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은 ‘학생-사회 운동’부터 출발해 같은 사상·정신 체계를 공유하고 계승해 나갔다는 점에서, 급격한 사회 변화에 따른 세대 간 단절이 각 영역에서 진행되는 한국 사회 안에서 독특성을 지닌다.
당장 ‘학생-사회 운동’만 하더라도 그 자체의 연원을 이보다 더 올려볼 수 있지만, 좌우갈등 및 한국전쟁에 이어 박정희 정권의 교묘한 학생-사회 운동 억제 및 산업화 과정에 참여 유인으로 인해 전후 세대 간의 사상적·정신적 승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이었다.
실제 ‘냉전 세대’와 ‘유신·386세대’ 엘리트·지식인 간에는 사고방식이나 사상·정신 체계에서 차이가 발견되며, 이는 후자의 전면적인 사회 주도권 행사 시도가 대두됐던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후부터 두 집단 간에 사회 운영 방식을 놓고 상호 갈등이 발생하는 모습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은 80년대까지의 사회 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해나갔던 ‘80년대 가치’를 자신의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데에 성공했으며, 오늘날 학생-사회 운동은 주무대로 활용되는 학생회의 조직·운영 체계에서부터 운동 방식과 그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사회 인식 및 담론까지 여전히 이들의 영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양상에서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은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에게 기특함과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이 교차하는 감정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은 ‘민주화’라는 시대의 요구에 편승해 어느 자리마다 새로운 사회 리더로서 주목받으며 적지 않은 발언권을 행사했지만, 후배들은 이전과 달라진 변화들 속에서 사회 리더는커녕 학생회뿐만 아니라 진보 진영 내 각 집단 안에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들은 자신들이 학생-사회 운동 시절부터 엄하게 가르쳐왔던 ‘80년대 가치’가 여전히 옳으며 이를 지켜나가겠다고 따라다니면서, 오늘날까지 바로 아래에서 온갖 역할들을 떠안고 있다.
자신들의 상당수는 현실과의 관계를 들먹이며 ‘80년대 가치’를 포기하거나 최소한 일부 수정을 주장하며 진보 진영을 떠나 다른 정치 세력들에 의탁했지만, 후배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다른 길들이 더 늘어났음에도 진보 진영에 자발적으로 들어가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며 ‘80년대 가치’를 전파하는 중이다.
이런 생각은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이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의 활동에 호감을 느끼고 무조건 옹호해주는 계기를 마련한다.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에 대한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의 감정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나타난 ‘80년대 가치’와 관련된 여러 사회적·정신적 요소들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로 인해 강화됐다.
87년 정치 민주화 이후 노무현 정권까지 한국 사회는 그 정통 계승자를 자처하는 진보 세력이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80년대 가치’를 서서히 반영·수용해나가는 흐름을 보여주었고 (보수 세력조차도 이를 전면 부정하는 데에는 소극적이거나 교묘하게 표출해나갔고, 오히려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 일부를 끌어들여 이미지 개선을 꾀하던 상황이었다), 이는 시간에 따른 사회 주도 세대의 교체가 진행될수록 계속되리라는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및 진보 세력들의 한계와 부정적인 면들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며 ‘80년대 가치’에 대한 비판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동시에 그와 대립·적대하거나 이전의 ‘냉전 세대’가 선호할만한 사회 인식들을 구성원들에게 주입하고자 했다.
게다가 자신들보다 아래 세대들도 이러한 ‘80년대 가치’에 대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시각에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그와 별개로 조금씩 시대적 적합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이렇게 자신들이 만들어왔던 유산들이 부정되거나 퇴보적이라는 인식이 외부 구성원들 안에서 나오는 상황 속에서,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외치고 있었으니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군다나 박근혜 정권의 퇴행적인 국정 운영 및 각종 부작용과 그에 대한 저항은,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이 자신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던 80년대를 상기하며 스스로 만들어나갔던 유산들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시대의 흐름으로 이제는 그 소명을 다하고 저무는 해가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지 회의하며 섭섭해하던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이, 박근혜 정권과의 대립·저항 속에서 자신들이 정신적으로나마 청년으로 되돌아가 시대의 주역이 된 듯한 체험을 하게 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같은 사상·정신 체계를 공유하며 자신들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지속해서 수행했던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은,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에게 진정한 자신들의 동지이자 후계자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은 자신들이 오랜 고민 끝에 만들어놓은 ‘80년대 가치’가 박근혜 세력 등 자신들보다 퇴행적인 집단들에 의해 부정되며 사회 주도 담론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지려는 것에 불쾌해하며 용납할 수가 없었다.
박근혜 정권의 부작용들은 그들이 앞으로 이러한 ‘역사적 후퇴’가 재등장하지 않도록 ‘80년대 가치’가 한동안 사회를 주도하는 정신적인 기재로 작동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자신들이 이제는 연령대가 높아진 상황에서 그와 같은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후배들인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의 도움과 계승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문제는 자신들과 정서적 유대 관계를 맺은 ‘기특한 후배’들의 사회적 영향력이나 존재감이 그다지 강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다.
때문에 ‘유신·386 운동권 세력’은 자신들이 그동안 축적한 사회적 명망을 활용해 ‘기특한 후배’들이 사회 전반에 주도권을 갖는 데에 힘을 실어주고자 했다.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이 주도하는 페미니즘 광풍을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이 적극적으로 지지·지원한 데에는 바로 이같은 목적이 깔려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에게도 페미니즘은 그동안 거시적인 영역의 사회적 과제들을 우선순위에 두었기에 두드러지지 않았을 뿐 지속적으로 관심 및 논의의 대상이었으며, 앞에서 지적했던 진보 세력과의 사고 구조 친연성으로 인해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담론이었다.
더욱이 이들은 그동안 낮은 사회 발언권과 생활의 어려움이 부각된 여성 관련 경험과 관념들을 가졌기에, 후배들보다 더욱 두드러졌던 현실과의 관계 고려 측면에서도 ‘페미피아’의 주장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듯이 보였다.
따라서 이런 담론을 내세우는 ‘기특한 후배’들의 행보는 진보 세력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며 ‘80년대 가치’를 확장하려는 행위로 비추어졌으며, 반대로 그에 반대하는 일반 대중들의 행동들은 진정한 ‘80년대 가치’의 후계자인 ‘기특한 후배’들의 ‘위대한 역사적 진전’을 가로막는 ‘폭거’이자 ‘반동’으로 인식됐다.
“여성 당원들에게는 언니가 필요합니다”라는 말에 화답한 심상정의 정의당 내 ‘메갈리아’ 지지 세력 옹호와 진중권 등 진보 성향 인사들의 “나도 메갈리안이다”라는 선언은 이러한 판단에서 나온 ‘눈물겨운 후배 챙기기’의 일환으로 읽을 수 있겠다.
그와 동시에 ‘페미니즘’ 광풍은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과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 간의 정서적 유대 관계를, 반대로 후자가 이용해 전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정당화돼가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이 ‘페미피아’와의 연합을 통한 메갈리아 지지를 정당화하는 작업들을 살펴보면, 80년대의 사례 혹은 ‘80년대 가치’를 들먹이는 모습들이 발견된다.
즉 자신들과 반대되는 견해들을 ‘군부독재세력’에, 그리고 메갈리아가 대변한다는 여성을 이에 ‘억압받는 민중’으로, 나아가 메갈리아와 연합하는 자신들을 민중의 편에 선 저항 운동의 선도자로 묘사하려는 경향이 찾아지는 것이다.
80년대 언어로 ‘페미피아’와의 연합을 표현하는 이같은 양상은, 해당 시기에 활발하게 사회 운동을 펼쳤던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에게 내재해있던 ‘80년대 가치’ 승계와 유지 희망 및 우월 심리를 자극함으로써 그들의 지지·지원을 유도해 내겠다는 의도가 포함됐다.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은 그러한 이미지 작업을 통해 (현실과는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경험을 떠올려주는 ‘기특한 후배’들과 메갈리아에 몰입해 자신들과 동일시하고, 정신적으로 청년이 돼 ‘80년대 가치’를 외치며 이 ‘약자’들을 보호함으로써 다시 시대의 주역이 된 듯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었다.
정현백·김부겸 장관의 혜화역 시위 지지 및 옹호는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과 ‘페미피아’들의 이같은 작업이 얼마나 ‘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에게 잘 먹혀들어갔는지를 드러내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아이러니는 이렇게 ‘80년대 가치’를 내세우며 긍정적인 시선을 얻게 된 ‘메갈리아’는 정작 그것을 부정하거나 모욕하는 행동들을 현실에서 서슴지 않고 저지른다는 점이었다.?‘유신·386세대 운동권 세력’은 후배들에게 자신들의 정신적 유산을 제대로 물려주기는커녕, 오히려 어느새 후배들의 욕망에 휘둘리며 그 본질을 긍정적으로 포장해주는 얼굴 마담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강청(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의 보좌 속에 ‘홍위병(메갈리아)’들에 ‘교시’하며 자신의 이론에 따른 대대적인 사회 변혁을 지휘한다고 믿었던 ‘모택동’의 역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제 ‘80년대 가치’는 ‘페미니즘’ 광풍처럼 그에 걸맞지 않은 행동들도 진보 세력의 이해관계만 맞아떨어지면, ‘약자’라는 이미지를 부여해 이를 팔아먹으며 옹호해주는 ‘장사 수단’으로 전락했음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페미니즘 광풍은 ‘포스트 80년대 운동권 세력’이 앞으로 선배들의 권위를 담보로 ‘80년대 팔이’를 하며, 사회 전반에 ‘80년대 가치’ 계승을 명분으로 자신들의 영향력 강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양아치’짓을 반복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표출한 사건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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